9월 162011
 

  영어와 시작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 않다.

  발단은 국민학교 4학년 시절로 돌아간다. 아직까지 그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방과후 수업으로 영어를 들었으며, 20문제중 4문제 밖에 못맞추었던 기억뿐이다. 결론은 시작부터 별로 그다지 나하고 맞지 않았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1에서 영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중1때 만난 영어는 도대체 어떻게 Lee ‘Yeong-Su’라는 단어를 읽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과외 다니면서 발음기호 못외운다고 손바닥 맞은 기억밖에 없다. 결국 발음기호를 어느정도 외우고 깨달음을 얻었지만 맞으면서 강제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좋아하는 대상에서 이미 벗어난 것이다. 한때 중1시절 영어 교과서의 챕터 몇개를 본의 아니게 외우기도 했었지만 좋아해서 외운 것은 아니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왠지 어려워 보이고 왠지 외우고 있다는게 멋있게 느껴졌던 단어인 – 프라크티케 라고 외웠던 – ‘Practice’라는 것 정도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 뭐 그다지 쩜쩜쩜을 찍으며 했던 영어는 중3 때 학원에서 한칸 찍고 가게 된다. 그 당시 다녔던 학원 원장님은 영어선생님이였는데 매일 수업 시작하면 문법의 기본이라면서 반복했던 것이였다. ‘S V O C’를 쓰고 S에는 명사,대명사,To부정사,동명사 같은 것이 올 수 있으며… 로 시작되는 세뇌 수준의 문법 수업이였다. 지금의 영어 해석능력은 그 때 그 분 덕택에 얻어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또 쩜쩜쩜을 찍던 영어 실력은 고2 때의 영어과외로 정점을 찍게 된다. ‘밥처럼 먹는 문법’인가 뭔가 하는 책을 마스터 한 나는 여전히 그 문법의 적용 방법이 이해가 안됬지만 어쨋든 실력을 한단계 올리는 기회가 됬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영어 수능 성적은 뒤에서 세는것이 더 빠를 정도 였다. 영어 실력이 대학교의 레벨로 연결되는 더러운 세상… 수학, 과학은 그나마 잘했던 나는 어떻게 수도권 대학은 들어 갔다.

  여전히 내 인생을 막던 영어는 대학 졸업 외국어 시험으로 나타나서 괴롭혔다. 졸업토익 시험도 쳐 보았지만 결론은 뭐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일어를 잘했던 나는 일어로 어떻게 졸업 외국어 시험은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온 나는 또 다시 영어란 시련에 부딪쳐야했다. 당장 내일 또 영어 시험이다.

  사실 영어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영어 공부하기가 귀찮은 점도 한목 하지만 정말 영어랑은 코드가 안맞는 것 같다. 일본 소설이 무조건 영어로 나왔다면 아마 영어를 잘 했을탠데 아쉽다. 뭐 결국은 내가 노력을 안한 것이 문제이지만, 다른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영어란 고행, 시련 그 이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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