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2011
 

  정말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뭐.. 매년 안그렇겠는가? 매년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양력’이라든지 ‘음력’과 같은 것도 편의상 만든 것에 불과하다. 물론 양력과 같은 경우 지구의 공전주기를 이용하여 만들어 졌고, 음력과 같은 경우 달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 뿐이다. 물론 음력과 같은 경우 이용할 만한 부분이 밀물,썰물 시기를 알아내는데 밖에 쓰이지 못하기 때문에(달의 이동과 공전주기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계절에 맞추기 위해서 윤달과 같은 복잡한 것을 사용했다 [1]. 음력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을 고종 대에 양력을 이용하기 시작함에 따라 바뀌게 된 것이다. 뭐 내 생각이지만, 양력을 더 쓰는 이유는 서양 중심이라는 이유와 달(Month)과 계절이 직접적으로 매치가 되는 양력이 더 우세했으니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AD(서기)나 BC(기원전)이나 단기(2333+AD)나 쇼와xx년 과 같은 경우도 다 비슷한 것이 아닌가? 에티오피아와 같은 경우 완전 다른 달력 시스템을 사용한다 [2].

  12월 25일이 성탄절, 부처님 오신날, 부활절 같은 건 사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신은 없을태지만 있다고 가정했을 때, 누구 마음대로 신의 생일을 논한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7일을 한 주로 정한 것은 무엇인가? 이 것도 결론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종교적 때로는 효율, 다른 국가가 하니까 따라하기 등등의 방법을 통해 7일을 결정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에서 1582년 10월 4일 다음날이 1582년 10월 15일인 것을 알고 있는가 [3]? 그러면 그 자랑스럽다는 성탄절은 어떻게 되는건가? 부활절은 어떻게 되는건가?

  여러분은 사람이 만든 것에 너무 끌려다니시지는 않으십니까? 60년 마다 중국식 년도가 돌아오는 건 아십니까(갑자, 을축, 병인, 정묘, …)? 한주가 9일인 경우, 1년에 4개월 밖에 없는 경우를 상상해 보신적은 있으십니까? 사실 지금이 12월 31일이 아니고 5월 31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고정관념을 깨면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TED 동영상 추천 드립니다. 쥴리아 스위니의 “하느님을 보내드리기 (내가 느끼는 하느님)”


   
[1]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달력”, 네이버 사전.
[2]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에티오피아력”,http://ko.wikipedia.org/wiki/에티오피아력
[3]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그레고리력”, http://ko.wikipedia.org/wiki/그레고리력

11월 062011
 

  Q.E.D 증명종료라는 만화를 보면서 판사,검사,변호사가 이어가는 이야기를 보았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피의자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유죄임을 증명해야하는 것은 검사라는 것이였다. 그리고 배심원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는 배심원이 피의자나 거기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동될 수 있다는 점도 꽤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하고… 

  문득 떠올랐다. CS를 하는 나로써는 뭐던 컴퓨터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제판이나 프로세스를 컴퓨터로만들어버리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단을 사람이 내리는 것이 아니고 기계가 내리는 것이다. 뭐 대신 컴퓨터가 판결해주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서 실제로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컴퓨터가 판결결과를 내려주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 모든 상황에 대해서 컴퓨터에다가 입력하고 반대의견을 입력한 다음에 돌리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가 나오는거다. 법정보까지 다 입력 되어있기 때문에 법리에대한 결과가 신뢰할만 하다고 해보자. 에러가 없어서 이 프로그램은 완전하다고 해보자. 컴퓨터는 어차피 기계일 뿐이니까 정(情)과 같은 요소는 배제하고 결과를 낼것이다. 언제나 기계의 판단은 올바르고 정확하다. 억울하게 무죄가 될 일은 없다. 입력을 잘 못하였거나 조사가 부족한 것이 없다면 확실하게 결과값을 출력할태니까 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가면 기계의 세상이지 사람의 세상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사회에서 잘잘못을 판별하는 곳의 일을 기계에 맞겼다는 것은 기계에게 조정당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052011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던 CS(Computer Science)가 요즘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렇게 좋아하던 CS가 지금은 그냥 단순히 할줄아는 것중 그나마 잘하는 것일 뿐이 되어 버렸다. 누가 뭐라하던 내가 엄청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Yes24에 들어가서 전공서적과 소설책을 둘러보았다. 한달마다 책을 구입해서 보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Yes24의 배송내역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확인이 가능했다. 어쨋든 오래간만에 책을 지를려고 보니 못보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이쪽 분야는 열심히 최신자료를 뇌에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단어부터가 이해 안되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최상위 Layer가 바뀌는거지 아래쪽은 거의 안바뀌지만 그렇다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시간은 한방향으로 흐르는데 좋아하는 것만 하고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작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던지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하고 있는 것을 긍적적인 사고를 하여 즐겁게 해라.”는 그냥 자기합리화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될 정도이다. 긍정적 사고도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지금의 나에게는 그냥 헛소리일 뿐이다. 어차피 해결방법이 없는거 그냥 아무생각하기 싫어서 WOW나 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수학처럼 명확하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글을 보면서 헛소리를 써놨네 하고 웃을 미래의 나에게 쓰는 글이다. 열심히 해야지.

9월 162011
 

  영어와 시작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 않다.

  발단은 국민학교 4학년 시절로 돌아간다. 아직까지 그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방과후 수업으로 영어를 들었으며, 20문제중 4문제 밖에 못맞추었던 기억뿐이다. 결론은 시작부터 별로 그다지 나하고 맞지 않았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1에서 영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중1때 만난 영어는 도대체 어떻게 Lee ‘Yeong-Su’라는 단어를 읽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과외 다니면서 발음기호 못외운다고 손바닥 맞은 기억밖에 없다. 결국 발음기호를 어느정도 외우고 깨달음을 얻었지만 맞으면서 강제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좋아하는 대상에서 이미 벗어난 것이다. 한때 중1시절 영어 교과서의 챕터 몇개를 본의 아니게 외우기도 했었지만 좋아해서 외운 것은 아니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왠지 어려워 보이고 왠지 외우고 있다는게 멋있게 느껴졌던 단어인 – 프라크티케 라고 외웠던 – ‘Practice’라는 것 정도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 뭐 그다지 쩜쩜쩜을 찍으며 했던 영어는 중3 때 학원에서 한칸 찍고 가게 된다. 그 당시 다녔던 학원 원장님은 영어선생님이였는데 매일 수업 시작하면 문법의 기본이라면서 반복했던 것이였다. ‘S V O C’를 쓰고 S에는 명사,대명사,To부정사,동명사 같은 것이 올 수 있으며… 로 시작되는 세뇌 수준의 문법 수업이였다. 지금의 영어 해석능력은 그 때 그 분 덕택에 얻어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또 쩜쩜쩜을 찍던 영어 실력은 고2 때의 영어과외로 정점을 찍게 된다. ‘밥처럼 먹는 문법’인가 뭔가 하는 책을 마스터 한 나는 여전히 그 문법의 적용 방법이 이해가 안됬지만 어쨋든 실력을 한단계 올리는 기회가 됬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영어 수능 성적은 뒤에서 세는것이 더 빠를 정도 였다. 영어 실력이 대학교의 레벨로 연결되는 더러운 세상… 수학, 과학은 그나마 잘했던 나는 어떻게 수도권 대학은 들어 갔다.

  여전히 내 인생을 막던 영어는 대학 졸업 외국어 시험으로 나타나서 괴롭혔다. 졸업토익 시험도 쳐 보았지만 결론은 뭐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일어를 잘했던 나는 일어로 어떻게 졸업 외국어 시험은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온 나는 또 다시 영어란 시련에 부딪쳐야했다. 당장 내일 또 영어 시험이다.

  사실 영어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영어 공부하기가 귀찮은 점도 한목 하지만 정말 영어랑은 코드가 안맞는 것 같다. 일본 소설이 무조건 영어로 나왔다면 아마 영어를 잘 했을탠데 아쉽다. 뭐 결국은 내가 노력을 안한 것이 문제이지만, 다른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영어란 고행, 시련 그 이상도 아니다. 

9월 092011
 

부산 김해 간 경전철이 생겼다고 한다[1]. 거기 기사를 보니 경전철이 생긴것은 참 잘된일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공해가 전혀 없는 전기를 사용한다는 부분이였다. 물론 이전에 버스를 이용했었기 때문에 화석연료가 사용되어서 공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기는 공해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라는 말은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내가 알고있는 전기를 만드는 방법 몇가지를 말하자면, 화력, 원자력, 수력, 풍력, 조력, 지열, 바이오, 인력(?), 태양열 및 태양광 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중 발전설비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공해는 무시하더라도 출처가 필요하지만 원자력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자력이 공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된다. 에어콘을 많이 쓰는 겨울에는 화력발전소도 가동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친환경 발전 설비도 있다. 이는 자연에서 얻어내는 에너지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전기가 “전혀” 공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 제화를 제공 했으니 그냥 써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냥 물 사먹듯이 전기를 쓰게되지 않을까? 저전력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단순히 유지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만들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전기를 아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가 만들어 지는 것도 사실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물론 잘 못지키는 일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이전에 간단한 단어 두글자 ‘전혀’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하고, 글을 읽는 사람은 주장하는 바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의’와 ‘전부’가 별거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1] 김상우 기자, “부산-김해 20년만에 경전철 시대, 오전 5시 개통”, 뉴시스, 2011-09-09

4월 162011
 

 
 Richard Dawkins on militant atheism – TED2002 [footnote]http://www.ted.com/talks/lang/eng/richard_dawkins_on_militant_atheism.html[/footnote]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TED 동영상 중 무신론과 관련된 동영상입니다. TED.com 의 CCL에 의해 동영상은 Share 가능합니다. 

 TED2002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약 30분 분량이구요. 이 내용을 보면 아주 재미있게 무신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도버 교육 위원회 사건(2005)[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지적_설계[/footnote]에서 해결된 ID 문제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물론 미국과 상황은 틀립니다만 무신론자로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 줍니다. 물론 저는 아직까지는 이렇게 전투적으로 무신론을 주장할 자신은 없지만요.. 하핫 ;ㅁ; 그리고 단어의 중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저는 1년 전 까지 종교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몇몇 동영상 강의를 보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종교는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보 처럼 느껴졌구요. 있지도 않은 것에게 기대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게된거죠. 저는 아이들이 과학적 회의주의[footnote]http://ko.wikipedia.org/wiki/회의주의[/footnote]적 입장에 서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증거 없이 무언가를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몇번이나 생각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 왔습니다. 과학적인 증거가 나오고 검증 된다면 우리는 매우 낮은 확률로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뉴턴의 법칙은 어느 오차 범위 안에서는 사실이죠. 물론 과학적 증거(evidence)도 있습니다. 뉴턴의 법칙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죠.

 언제나 바뀌지 않고 고인 물 처럼 하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틀릴 수 있으며, 틀린 것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한국 무신론자 모임[footnote]http://www.atheism.or.kr[/footnote]을 참조해주세요.